“촛대바위 보러 왔는데, 정작 주차하고 나서 어디로 걸어야 하는지는 아무도 안 알려주더라.”
추암 촛대바위는 이름값이 어마어마한 곳입니다. 애국가 1절에 깔리는 그 바위,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에 실린 그 지형. 그런데 막상 검색해보면 “예뻤어요” “일출 명소예요”만 나오고, 차 세우고 나서 몇 분을 어느 방향으로 걸으면 되는지를 알려주는 글이 없습니다. 저도 그래서 현장에서 한 번 헤맸고요.
그래서 이 글은 감상문 대신 동선표로 씁니다. 8월 말 평일 낮에 실제로 걸었고, 사진에 박힌 촬영 시각을 그대로 뽑아 분 단위로 복원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추암역 앞에서 출발해 출렁다리 위까지 26분, 되돌아 나오는 것까지 36분이었습니다. 라면 세 번 끓일 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지형을 다 봅니다.
🚉 12:35 — 출발점은 추암역 앞이다

차로 오든 기차로 오든 사람들이 모이는 지점은 추암역 앞입니다. 역이라고 해서 큰 건물을 상상하면 안 되고, 선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작은 간이역입니다. 역 표지판 옆으로 계단과 굴다리가 갈리는데, 여기서 방향만 잘 잡으면 그 뒤로는 길이 하나뿐이라 헤맬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이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여기가 해파랑길 33코스의 시작점이라서, 안내판에 이 일대 도보 정보가 통째로 정리돼 있습니다.

안내판에 적힌 숫자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 코스 | 구간 | 총거리 | 소요시간 | 중간 지점(km) |
|---|---|---|---|---|
| 33코스 | 추암역 → 묵호역 | 14.0km | 4시간 30분 | 추암역 7.0 → 동해역 3.0 → 한섬해변 4.0 → 묵호역 |
| 34코스 | 묵호역 → 한국여성수련원입구 | 15.0km | 5시간 00분 | 묵호역 6.0 → 대진항 3.0 → 망상해수욕장 6.0 → 한국여성수련원입구 |
💡 팁 — 안내판의 “현위치 추암역” 표시를 기준으로 보면, 오늘 걷는 촛대바위·능파대·출렁다리 구간은 33코스의 맨 앞 1km도 안 되는 구간입니다. 즉 해파랑길을 완주할 게 아니라면 이 앞머리만 잘라 먹는 게 정답입니다.
🌊 12:42~12:45 — 해변을 지나면 바로 “정동방” 표지석
역에서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백사장이 나오고, 백사장 끝 소나무 언덕으로 데크가 이어집니다. 이 언덕 초입에 큼직한 표지석이 하나 서 있는데, 처음엔 그냥 관광용 조형물인 줄 알고 지나칠 뻔했습니다.

표지석에는 “남한산성의 正東方(정동방)은 이곳 추암해수욕장입니다”라고 적혀 있고, 아래에 북위 37°28′, 그리고 1999년 10월 26일 국립지리원 공인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정동진은 서울(광화문)의 정동쪽으로 유명한데, 여기는 남한산성 기준이라는 얘기죠. 같은 동해안에서 기준점 하나 차이로 이름이 갈린 셈입니다.
참고로 표지석 오른쪽 바다에 이미 촛대바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진 욕심 있으면 여기서 한 장 찍고 가는 게 좋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나무에 가려 각도가 애매해지거든요.
🖼 12:48 — 김홍도가 여기 서서 그렸다는 안내판

언덕길 중턱에 타일로 만든 안내판이 하나 있습니다. 「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의 능파대, 김홍도 작품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안내판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금강사군첩은 1788년 정조의 어명으로 김홍도가 44세에 그린 화첩이고, 이름은 조희룡의 『호산외사』에 나오는 “명사금강사군산수(命寫金剛四郡山水)”라는 구절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추암 전망대에 올라 당시의 기암괴석을 보고 바위의 절리까지 상세하게 묘사한 게 특징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림을 보고 고개를 들면 실제로 같은 실루엣이 서 있습니다. 238년 전에 여기 서서 스케치한 사람이 있었다는 게 좀 이상한 기분이더군요. 이 안내판, 사람들 대부분 그냥 지나가던데 이 코스에서 제일 아까운 스팟입니다.
🕯 12:49 — 추암 촛대바위, 실제로는 이렇게 생겼다

사진으로 익숙한 그 장면입니다. 다만 실제로 보면 촛대바위 혼자 서 있는 게 아니라, 크고 작은 바위기둥이 무리로 서 있고 그중 하나가 유독 가늘고 높은 구조입니다. 애국가 영상에서는 앵글을 좁게 잡아 한 개만 부각시킨 거죠.

가까이서 보면 세로로 쪼개진 결이 선명합니다.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촛대바위는 파랑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시스택(sea stack)에 해당하는 지형이고,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교과서 삽화를 실물로 보는 셈입니다.
🪨 12:53 — 능파대, “한국의 석림”이라 불리는 이유

촛대바위 전망 데크 옆에 갈색 안내판이 서 있습니다. 제목이 「한국의 석림 — 능파대(凌波臺, Neungpadae)」이고, 아래에 형성 원리가 적혀 있습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항목 | 안내판 내용 |
|---|---|
| 능파대의 범위 | 인근 하천·파랑이 운반한 모래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죽도)와 촛대바위 같은 암석기둥(라피에)을 포함한 지역의 총칭 |
| 라피에란 | 석회암이 지하수의 용식작용을 받아 형성된 암석기둥 |
| 여기가 특별한 이유 | 다른 지역 라피에와 달리 파도에 의해 자연적으로 드러난 국내 유일의 해안 라피에 |
| “한국의 석림” | 세계자연유산 ‘중국의 석림’보다 규모는 작지만 국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라피에가 발달 |
| 다른 바위들 | 잠자는 거인바위, 코끼리바위, 양머리바위 등 |
| 촛대바위 | 파랑 침식으로 만들어진 시스택(sea stack), 고등학교 한국지리 교과서 수록 |
안내판 글쓴이가 한국지리학회 회장으로 표기돼 있어서, 관광용 미사여구가 아니라 지형학 설명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코스가 가족 단위로 오기 좋습니다 — 애들한테 설명할 거리가 널려 있어요.

데크를 따라 조금만 더 가면 라피에 무리가 통째로 내려다보이는 지점이 나옵니다. 회백색 바위가 뾰족뾰족하게 솟아 있고 그 사이로 물이 파랗게 들어옵니다. 개인적으로 이 코스의 ★한줄평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 “촛대바위보다 그 옆 바위 숲이 본체다.”
한 가지 더. 같은 안내판 아래쪽에는 노란 「안내문」이 따로 붙어 있는데, 이곳은 군 작전지역이므로 경계근무에 지장을 주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관광지 한복판에 붙어 있는 문구라 좀 낯설지만, 뒤에 나올 출렁다리 규정과 이어지는 얘기라 기억해두면 좋습니다.
🌉 12:55~13:01 — 추암 촛대바위 출렁다리, 운영시간과 규칙
능파대 데크가 끝나는 지점에서 “추암촛대바위 출렁다리 / 조각공원 가는길” 이정표가 나옵니다. 그 옆에 세워진 검은 판이 출렁다리 예·경보 시스템인데, 안전(초록) / 주의(노랑) / 위험·이용금지(빨강) 3단계로 표시됩니다. 다리 앞까지 갔다가 빨간불이면 그냥 돌아 나와야 하니, 멀리서 이 신호부터 보고 움직이는 게 낫습니다.

입구 안내판에 적힌 운영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입니다. 그리고 왜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가 다른 안내판에 설명돼 있는데, 이 출렁다리와 해안산책로는 인접 군부대에서 소초해안경계 순찰로로 함께 사용하는 시설이라 지정된 이용시간 내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까 본 “군 작전지역” 안내문과 같은 맥락이죠.
유의사항은 8개 항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대로 옮기면:
| 번호 | 유의사항 (현장 안내판 원문 기준) |
|---|---|
| 1 | 다리를 건널 때 절대 뛰거나 난간에 올라가지 말 것 |
| 2 | 음주 시 통행 자제 · 시설물 보호를 위해 음식물 반입과 쓰레기 투척 금지 |
| 3 | 낚시와 허가 없는 드론 운용 금지 |
| 4 | 노약자·어린이는 보호자와 함께 이용 |
| 5 | 기상악화 등으로 위험할 경우 통행 제한(예·경보 시스템 확인) |
| 6 |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오른쪽으로 걷기 |
| 7 | 모든 시설물 보호 |
| 8 | 이용시간·안전수칙 미준수로 발생한 사고는 이용자 책임 |
💡 드론 챙겨온 분들 주의 — 3번 항목이 “허가 없는 드론 운용 금지”입니다. 군 경계 구역과 겹치는 곳이라 그냥 띄우면 안 됩니다. 여기까지 장비 들고 와서 표정 관리하는 사람 없길 바랍니다.

다리 위는 생각보다 넓습니다. 폭이 좁아 서로 비켜야 하는 구조가 아니라,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여유가 있습니다. 바닥은 목재 데크에 가운데만 격자 철판(그레이팅) 띠가 길게 박혀 있어서, 그 위를 밟으면 발밑으로 바다가 그대로 내려다보입니다. 고소공포 있으면 가장자리로 걸으면 되고, 스릴 원하면 중앙선을 밟으면 됩니다. 이름은 출렁다리인데 실제로 크게 출렁이지는 않습니다 — 무서워서 못 건널 정도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 추암 촛대바위 코스 실측 동선표 (사진 촬영 시각 기준)
사진 메타데이터에 남은 시각을 그대로 정리한 표입니다. 중간에 사진 찍느라 멈춘 시간이 포함돼 있으니, 순수 도보 시간은 이보다 더 짧습니다.
| 시각 | 지점 | 경과 | 비고 |
|---|---|---|---|
| 12:35 | 추암역 앞 도착 | 0분 | — |
| 12:37 | 해파랑길 33·34코스 안내판 | +2분 | 거리·소요시간 확인 |
| 12:40 | 바다 앞 개천 구간 | +5분 | |
| 12:42 | 추암해수욕장 백사장 | +7분 | |
| 12:45 | 정동방 표지석 · 능파정 | +10분 | 촛대바위 첫 조망 |
| 12:48 | 김홍도 금강사군첩 안내판 | +13분 | |
| 12:49 | 촛대바위 전망 데크 | +14분 | 메인 포토존 |
| 12:53 | 능파대 안내판 | +18분 | |
| 12:55 | 출렁다리 이정표 · 예경보 시스템 | +20분 | 신호 확인 |
| 12:57 | 출렁다리 입구 안내판 | +22분 | 운영시간 06:00~22:00 |
| 13:01 | 출렁다리 위 통과 | +26분 | |
| 13:11 | 되돌아 나옴 | +36분 | 왕복 완료 |
📋 추암 촛대바위 실용정보 정리
| 항목 | 내용 |
|---|---|
|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추암동 일대 |
| 출발점 | 코레일 추암역 앞 (해파랑길 33코스 시점) |
| 왕복 소요 | 36분 (2026년 8월 하순 평일 낮, 사진 촬영 시각 기준 실측) |
| 출렁다리 운영시간 | 오전 6시 ~ 오후 10시 (현장 안내판) |
| 통제 기준 | 기상악화 시 통행 제한 · 입구 예·경보 시스템 3단계(안전/주의/위험이용금지) |
| 특이 규정 | 낚시·무허가 드론 금지, 우측통행, 군 소초해안경계 순찰로 공용 구간 |
| 해파랑길 연계 | 33코스 추암역→묵호역 14.0km / 4시간 30분 |
| 관광 문의 | 동해관광 홈페이지 및 033-530-2448 (현장 안내판 표기) |
※ 입장료·주차요금은 현장에서 확인한 근거 자료가 없어 이 글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금액이 필요하면 방문 전 동해관광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 추천 / ❌ 비추
✅ 이런 사람에게 추천
- 동해 일정에 1시간만 낼 수 있는 사람
- 기차(추암역·동해역)로 움직이는 여행자
- 교과서에 나오는 지형을 실물로 보고 싶은 사람
- 아이와 함께라 설명거리가 필요한 가족
❌ 이런 사람에겐 비추
- 본격 트레킹을 기대한 사람 (너무 짧습니다)
- 바람 강한 날 — 출렁다리가 통제됩니다
- 드론 촬영이 목적인 사람 (금지 구역)
- 오후 10시 이후·오전 6시 이전 방문 계획
마무리 — 그리고 다음 편
36분짜리 코스인데 안내판만 다섯 개를 읽었습니다. 정조 어명으로 그린 화첩, 국내 유일 해안 라피에, 남한산성 정동방, 군부대 순찰로 겸용 다리까지. 추암 촛대바위는 “예쁜 바위 보고 오는 곳”으로 소비되기엔 정보 밀도가 꽤 높은 장소였습니다.
이번 동해·강릉 일정의 다른 기록도 같은 방식(현장 안내판·실촬 기준)으로 정리해뒀습니다.
- 삼척해상스카이워크 반나절 코스 — 해수면 40m 위 100m 데크 (같은 날 오후 일정)
- 묵호 어달항 산책 코스 — 컬러 테트라포드 방파제와 카페 가격표
- 정동진 모래시계공원 반나절 코스 — 시간박물관 입장료 정리
- 뉴동해관광호텔 객실 후기 — 동해 시내 거점 숙소
다음 편은 이 코스 이정표에도 등장한 추암 조각공원 쪽, 그리고 동해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구간을 정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