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28팀.” 점심 한 끼 먹겠다고 키오스크 앞에서 이 숫자를 봤을 때, 오늘 하루 일정이 통째로 밀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도 결론부터 말하면, 이날 해운대는 밥도 풍경도 전망대도 안 아까웠어요.
부산·경주 2박3일의 둘째 날. 첫날은 부산역 도보권만으로 알차게 끝냈고(→ 1편: 브라운핸즈 백제와 초량 꼼장어), 둘째 날은 아예 해운대로 넘어왔습니다. 동선은 딱 세 덩어리였어요. 점심(해목) → 동백섬 누리마루 산책 → 부산 엑스더스카이 100층 전망대. 걸어서 다 이어지는, 욕심 안 부린 하루였습니다.
🍚 낮 — 해운대 ‘해목’에서 28팀을 기다리다
해운대 도착하자마자 점심집부터 잡았습니다. 목적지는 해목(海木) 해운대점. 히츠마부시랑 카이센동(해물덮밥) 하는 집인데, 도착해서 키오스크를 켜니 현재 대기 28팀이 떠 있더라고요. 5인 이상은 테이블이 갈릴 수 있다는 공지, 영업 시작 후 30팀은 매장 앞에 대기하라는 안내까지. 인기 맛집의 전형적인 진입 장벽이었습니다. 마침 근처에 갓 오픈한 베이커리(‘부산당’)가 소금빵 1,500원 오픈 이벤트를 하고 있어서, 빵으로 허기를 달래며 순번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기다려서 받은 게 이 상. 2단 도시락에 회를 얹은 덮밥, 조개가 통째로 들어간 미역국, 그리고 옆에 놓인 육수 주전자가 포인트였습니다. 먹는 방식이 정해져 있는데, ①처음엔 그냥 회덮밥으로 한 술 떠서 재료 본연의 맛을 보고 ②두 번째는 김이랑 고명, 와사비를 얹어서 또 한 술 ③마지막엔 이 따끈한 육수를 밥에 부어 오차즈케처럼 후루룩 마무리. 나고야식 히츠마부시(장어덮밥)의 ‘3번 다르게 먹기’를 회 버전으로 옮겨온 구성이라, 한 그릇으로 세 번의 다른 맛을 보게 됩니다. 특히 마지막 육수 말이가 물리기 직전에 입을 개운하게 정리해줘서, 이 순서를 지켜 먹는 게 확실히 이득이었어요. 28팀 기다린 게 아깝지 않았다면, 이 집이 왜 줄 서는지 대충 짐작이 가실 겁니다.

🌊 오후 — 동백섬 산책, 그리고 누리마루 APEC하우스
밥을 먹고 걸어서 동백섬으로 향했습니다. 해운대해수욕장 끝자락에서 바로 이어지는 섬(사실은 육계도라 걸어서 들어갑니다)이라, 소화도 시킬 겸 산책하기 딱 좋았어요. 해안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누리마루 APEC하우스가 나옵니다. 2005년 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그 건물이요. 돔 지붕이 얹힌 하얀 유리 건물이 바다 위로 툭 튀어나와 있는데, 뒤로 광안대교와 마린시티 스카이라인까지 한 프레임에 잡혀서, 사진 욕심 있는 분들은 여기서 한참 서 있게 됩니다.

누리마루는 입장 무료라, 안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이름이 좀 어려운데 ‘누리(세상)’와 ‘마루(정상·꼭대기)’를 합친 순우리말로, 세계 정상들이 모인 자리라는 뜻이라고 해요. 안으로 들어가면 실제 정상회의가 열렸던 회의장과 바다를 향해 통유리로 뚫린 로비를 그대로 볼 수 있어서, 무료 관람치고는 볼거리가 알찹니다. 다만 운영시간이 09:00~17:00이고 매월 첫째 월요일은 정기휴관이라, 오후 늦게 동백섬에 도착하는 일정이면 마감 시간부터 확인하고 움직이는 게 안전합니다. 건물 처마 아래로 나가면 바다 쪽 전망이 시원하게 뚫려 있는데, 흐린 겨울 하늘이었는데도 광안대교 라인이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날 맑은 날이면 여기 앉아서 물멍만 때려도 반나절 갈 것 같더라고요.

🏙️ 저녁 — 부산 엑스더스카이 100층, 밥부터 스카이워크까지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부산 엑스더스카이였습니다. 해운대 엘시티(LCT) 랜드마크타워 100층에 있는 전망대인데,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이라 높이 하나는 확실합니다. 그런데 저희는 전망대에 올라가자마자 뷰부터 보지 않고 100층에 있는 다이닝에서 밥부터 먹었어요. 창밖으로 해운대 앞바다가 쫙 깔린 자리에서 파스타 두 접시랑 안심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전망대 부속 식당 치고는 플레이팅이 꽤 정성 들어간 구성이었습니다.

배를 채우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전망대를 돌기 시작했습니다. ‘X the SKY 100’ 사인이 걸린 미러룸 구간이 있는데, 파란 네온 라인이 위아래 사방으로 무한 반사되면서 복도 끝이 안 보이게 만드는 포토존이에요. 사람 없을 때 각 잡고 찍으면 SF 영화 세트장 같은 컷이 나옵니다. 요즘 전망대들이 ‘창밖 뷰’ 하나로만 승부하지 않고 이런 체험형 공간을 중간중간 껴 넣는 추세인데, 엑스더스카이도 그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뷰가 흐린 날 왔더라도 실내 구간에서 건질 사진이 있다는 게, 겨울 흐린 하늘 밑에서 온 저 같은 사람에겐 은근한 보험이었어요.

그리고 가장 화제인 구간은 유리 바닥 스카이워크. 발밑이 통유리라 100층 아래가 그대로 내려다보입니다. 유리에는 ‘366m’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높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올라서면 고소공포증 있는 분들은 한 박자 멈칫할 만합니다. 사진처럼 발만 살짝 올려두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컷이 이 구간의 국룰이에요.

마지막은 전망대 카페. 통창 앞에 앉아 야경이 켜지길 기다리며 초코 무스를 하나 시켰는데, 코코아 가루 위에 하트가 그려져 나왔습니다. 스푼이 세 개 나온 건 나눠 먹으라는 뜻이겠죠. 해가 지면서 해운대 마천루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는 걸 100층에서 내려다보는 맛, 이게 엑스더스카이의 진짜 값어치라고 생각합니다.

📋 부산 엑스더스카이 · 누리마루 실용정보
| 구분 | 부산 엑스더스카이 | 누리마루 APEC하우스 |
|---|---|---|
| 위치 | 해운대구 달맞이길 30, 엘시티 100층 | 동백섬 내(해운대해수욕장 도보권) |
| 입장료 | 대인 27,000원 / 소인·경로 24,000원 | 무료 |
| 운영시간 | 10:00~21:00 (입장마감 20:30), 연중무휴 | 09:00~17:00, 첫째 월요일 휴관 |
| 주차 | 이용객 2시간 무료 | 동백섬 공영주차장 이용 |
💡 동선 팁 — 해운대해수욕장을 가운데 두고 서쪽 끝 동백섬(누리마루) ↔ 동쪽 끝 엘시티(엑스더스카이)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낮에 동백섬 걷고, 해 질 무렵 엑스더스카이 올라가서 야경까지 보는 순서가 제일 효율적이에요. 전망대는 일몰 30분 전 입장이 국룰 — 노을과 야경을 한 자리에서 다 먹습니다.
✅ 추천 — 해운대를 하루에 압축하고 싶은 사람 / 전망대 야경 좋아하는 사람 / 걷는 여행 선호하는 사람.
❌ 비추 — 고소공포증이 심한 사람(유리 바닥 구간) / 웨이팅 자체를 못 견디는 사람(맛집은 대기 각오).
★ 한줄평: 밥·산책·전망을 걸어서 잇는, 해운대 하루 정석 코스. 28팀 웨이팅도, 366m 유리 바닥도 결국 다 남는 장면이 됐다.
다음 편은 부산·경주 2박3일 ③ — 크리스마스 이브의 경주입니다. 황리단길과 대릉원, 첨성대까지. 도시 하나가 통째로 조명 켜지는 밤을 담아 올게요. 여행 글이 처음이라면 여행 카테고리에 강릉·후쿠오카 편도 있으니 같이 보시길.